건설법의 변천사1 - 국토계획법
건설법은 도시의 물리적 공간형성과 관련된 법률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개념으로 작게는 건축물을 미시적으로 보는 건축법에서 크게는 도시 전체의 토지이용관계를 조절하는 국토계획법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법률들로 구성돼 있다. 또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을 규제하는 주택법과 도시의 일부를 재개발하는 도시정비법, 택지를 조성하기 위한 택지개발촉진법, 도시개발법 등이 건설법의 구성요소들이다. 이들은 각 건설 현장에서 아주 중요한 매뉴얼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대립하는 이해관계인들의 이익을 조절하는 공법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건설법에서 가장 중요한 법률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국토계획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국토계획법이 ‘국토’ 전체를 규율하는 법이라는 의미에서라기보다 ‘도시’를 거시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토계획법은 지금도 여전히 ‘도시계획법’이라고 불리는 것이 옳다.
19세기 중 후반에 일본은 서구를 배우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서구 도시들의 웅장함과 계획성에 감동을 받았다. 일본 도시의 목조건물과 좁은 도로는 세계로 나아가는 근대국가 일본에 가장 큰 장애로 인식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다. 그 결과 1919년에 일본은 도시계획법을 제정하는데 그 목표는 동경을 근대국가의 수도답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일본의 도시계획법은, 도시계획이 도시성장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던 서구와 상당히 다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의 도시계획법에는 기성시가지를 개발, 정비하는 기능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이 포함됐다.
1930년대 중국과의 전쟁을 수행하던 일본은 식민지였던 조선에 일본의 도시계획법을 도입하고 한반도에 대중국 병참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법적 토대를 확보했다. 새롭게 한반도에 도입된 도시계획법은 총독부령의 형태를 띠고 ‘조선시가지계획령’이라는 명칭을 부여 받았다. 조선시가지계획령은 도시계획과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포함하고 이에 더해 건축법(시가지건축물법)까지도 합친 통합적 입법이었다. 조선시가지계획령은 1945년 미군정하에서 ‘시가지계획령’으로 명칭만 바뀐 채 존속하다가 1962년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으로 분리됐다.
1962년에 제정된 도시계획법은 일본법의 영향으로 여전히 도시를 개발, 정비하는 기능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고 이러한 경향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당히 남아 있다. 1966년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이, 1970년대 도시재개발법이 도시계획법을 분리된 것을 보면 도시계획법은 연혁적으로 도시개발의 모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현대의 도시계획 실무자들이 도시계획법을 도시개발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 도시계획의 상위계획으로 도시기본계획이라는 제도가 도입되고, 도시계획의 수립에 있어 주민의 공람절차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정비되었다. 2000년에는 건축법에 혼재하던 도시계획적 수단들이 모두 도시계획법으로 옮겨지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영향을 받아 개발제한구역이 도시계획법에서 분리되는 대폭의 개정이 있었다. 1970년대부터 존속하던 국토이용관리법은 준농림지역 난개발로 입지가 좁아지면서 2003년 도시계획법에 흡수됐다.
국토계획법은 도시계획을 통해 도시 전체의 토지사용권을 지배하는 막강한 법률이다. 그러나 현재 시장에서는 도시계획을 하나의 기술적 수단으로만 볼 뿐 이들이 초래하는 법적 문제들을 정리해서 토지소유자나 사업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하다. 수요가 결국 공급을 창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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